크리스마스의 기원 – 샤머니즘에서 코카콜라까지, 인류학으로 읽는 성탄절의 역사와 현대적 재구성


우리가 매년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단순한 종교적 기념일을 넘어, 수천 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다층적인 문화적 팰림프세스트(Palimpsest)라고 할 수 있다. 12월 25일이라는 날짜 뒤에는 고대 로마의 광란적인 축제 사투르날리아와 태양신 숭배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하늘을 나는 산타클로스의 신화 속에는 시베리아 설원에서 환각 버섯을 섭취하던 샤먼의 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본 포스트는 크리스마스 장식 하나하나에 깃든 인류의 오래된 두려움과 욕망을 추적한다. 북유럽의 피비린내 나는 인신공양 의례가 어떻게 평화로운 전나무 트리로 변모했는지, 그리고 20세기 미국 자본주의의 정수인 코카콜라와 백화점 마케팅이 어떻게 성 니콜라스의 전설을 전 지구적 상업 아이콘으로 재탄생시켰는지를 분석한다. 팩트와 민속, 그리고 허구가 교차하는 이 지적 탐험을 통해 현대인이 소비하는 성탄의 신성이 사실은 거대한 문화적 융합의 결과물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기원
크리스마스의 기원





다층적 시간의 팰림프세스트(Palimpsest)로서의 크리스마스


팰림프세스트(Palimpsest)는 원래 고대 서양에서 쓰이던 양피지 문서를 뜻하는 말이다. 당시에는 종이가 귀했기 때문에, 이미 글자가 적힌 양피지의 내용을 긁어내거나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새로운 글을 적어 재사용하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깨끗하게 지워도 예전에 적었던 글자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게 되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 시대의 흔적들이 겹쳐져 있는 상태를 팰림프세스트라고 부른다. 즉, 다층적 시간의 팰림프세스트로서의 크리스마스라는 표현은 크리스마스라는 기념일 안에 여러 시대의 문화와 의미가 층층이 쌓여 있다는 뜻이다.


12월 25일, 전 세계의 거리는 붉은색과 초록색의 조명으로 물들고, 사람들은 선물을 교환하며, 거실 한구석에는 장식된 나무가 세워진다. 우리는 이것을 크리스마스라고 부르며, 흔히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절기로 이해한다. 


그러나 현대인이 소비하는 크리스마스의 풍경을 한 꺼풀 벗겨내면, 그 속에는 기독교 이전의 고대 신앙, 농경 사회의 생존 의례, 그리고 근대 산업 자본주의의 마케팅 전략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는 단일한 역사적 사건의 기념일이라기보다는, 인류가 겨울이라는 계절적 극한을 견디기 위해 고안해 낸 다양한 문화적 기제들이 수천 년의 시간을 두고 퇴적된 거대한 지질학적 층위와 같다.


본 포스트는 대중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크리스마스의 기원설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역사적, 인류학적 진실을 추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필자는 시베리아의 설원에서 환각 버섯을 섭취하던 샤먼의 의식이 어떻게 산타클로스의 비행 전설과 연결되는지, 로마 제국의 광란적인 축제 사투르날리아가 어떻게 성스러운 성탄절로 변모했는지, 그리고 20세기 미국의 거대 기업들이 어떻게 이 모든 전통을 상업적으로 표준화했는지를 면밀히 살펴볼 것이다.


특히 본 포스트는 단순한 사실의 나열을 넘어, 각 요소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대의 ‘글로벌 명절’을 구성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는 팩트(Fact)와 민속(Folklore), 그리고 허구(Fiction)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적 탐험이 될 것이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크리스마스 장식 하나하나에 깃든 인류의 오래된 욕망과 두려움을 마주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북쪽의 붉은 환영 – 시베리아 샤머니즘과 산타클로스의 기원

시베리아 샤머니즘과 산타클로스의 기원
시베리아 샤머니즘과 산타클로스의 기원


지구의 북위 66.6도, 666? 여하튼, 즉 북극권(Arctic Circle)은 태양이 지평선 위로 떠오르지 않는 극야(Polar Night)가 시작되는 경계선이다. 이 춥고 어두운 땅에서 고대 시베리아의 원주민들, 특히 퉁구스족(Tungus), 코리약족(Koryak), 축치족(Chukchi) 등은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독특한 영적 세계관을 구축했다.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확산된 ‘산타클로스 샤먼 기원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가설은 산타클로스의 붉은 옷, 순록 썰매, 굴뚝을 통한 침입 등 핵심적인 도상학적 요소들이 시베리아 샤먼의 의례, 특히 환각 버섯인 광대버섯(Amanita muscaria)의 사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광대버섯은 선명한 붉은색 갓 위에 흰 점들이 박혀 있는 모습으로, 국내(한국)에서도 방영한 애니메이션인 개구장이 스머프나 동화책에 자주 등장하는 바로 그 버섯이다. 이 버섯은 이보텐산(ibotenic acid)과 무시몰(muscimol)이라는 향정신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섭취 시 강력한 환각 작용을 일으킨다. 


시베리아의 샤먼들은 영계(spirit world)와 소통하기 위해 이 버섯을 의례적으로 사용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버섯의 색감이 산타클로스의 붉은 옷과 흰 털 장식의 배색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것이다.



1. 순록, 버섯, 그리고 비행의 체험


샤먼 기원설의 가장 매혹적인 부분은 ‘비행(Flying)’에 관한 해석이다. 산타클로스는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다. 현실의 순록은 날지 못하지만, 광대버섯을 섭취한 샤먼의 의식 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시베리아의 순록들 역시 광대버섯을 매우 좋아한다. 순록이 눈 속에 파묻힌 광대버섯을 찾아 먹으면, 그들은 마치 취한 듯이 행동하며 평소보다 훨씬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인다. 샤먼들은 이러한 순록을 관찰하며 버섯의 효능을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 기이한 점은, 인간이나 동물은 광대버섯의 독성 물질을 대사하여 독성을 줄이고 환각 성분인 무시몰만을 소변으로 배출한다는 사실이다.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버섯의 직접 섭취로 인한 부작용(구토, 경련 등)을 피하기 위해, 광대버섯을 직접 먹지 않고 버섯을 먹은 순록의 소변이나, 버섯을 먹은 샤먼의 소변을 받아 마시는 관습이 있었다. 


이렇게 ‘정제된’ 환각 성분을 섭취한 샤먼과 부족민들은 영혼이 육체를 이탈하여 하늘을 비행하는 듯한 강렬한 부양감을 경험했다. 이 트랜스 상태에서 그들은 자신이 키우던 순록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환영을 보았고, 그 순록을 타고 영계 여행을 떠난다고 믿었다. 즉, ‘하늘을 나는 순록’은 동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샤먼의 환각적 체험이 구전되면서 신화화된 결과물일 수 있다는 것이다.



2. 유르트의 연기 구멍과 굴뚝 전설


산타클로스가 문이 아닌 굴뚝으로 들어온다는 설정 또한 시베리아의 주거 형태인 유르트(Yurt)의 구조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시베리아의 겨울은 엄청난 폭설을 동반하며, 이로 인해 유르트의 1층 출입구가 눈에 파묻혀 봉쇄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때 유르트의 거주자들은 지붕 중앙에 뚫려 있는 연기 배출구(Smoke hole)를 통해 사다리를 타고 출입해야 했다.


동지 무렵, 샤먼은 부족민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치유의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광대버섯을 채취하여 주머니에 담아 마을을 방문한다. 출입구가 막힌 유르트에 들어가기 위해 샤먼은 지붕 위로 올라가 연기 구멍을 통해 내부로 하강했다. 그리고 가져온 붉은 버섯들을 화로 주변이나 내부에 세워둔 기둥(세계수, World Tree를 상징)에 걸어 말리거나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이 장면을 상상해 보자. 붉은색과 흰색이 섞인 옷을 입은 신비로운 존재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와서, 지붕의 구멍(굴뚝)을 통해 집 안으로 내려와, 붉은색 선물을 화로가에 놓아두고 사라진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의 방문 장면과 소름 끼칠 정도로 일치한다. 


일부 학자들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붉은 장식볼을 매다는 관습 역시, 소나무 가지 아래에서 자라는 광대버섯을 형상화하거나, 채취한 버섯을 나무에 걸어 건조하던 관습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3. 비판적 검토 – 매혹적인 유사성과 역사적 단절


그러나 이러한 ‘샤먼 기원설’은 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받기보다는, 구조적 유사성에 기반한 매력적인 가설이나 현대에 재구성된 신화로 취급받는 경향이 강하다. 우선, 시베리아의 샤먼 전통이 서구의 크리스마스 전통으로 직접 전승되었다는 역사적 증거가 희박하다. 


산타클로스의 직접적인 모델인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는 4세기 소아시아(현재의 튀르키예)의 주교였으며, 그의 전설은 유럽을 거쳐 네덜란드의 신터클라스(Sinterklaas) 전통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17세기 뉴암스테르담(뉴욕)으로 이주한 네덜란드 이민자들에 의해 미국화되면서 ‘산타클로스’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시베리아 샤머니즘이 개입할 지리적, 역사적 접점은 사실상 거의 없다. 


또한, 샤먼의 복장이 반드시 붉은색과 흰색이었다는 주장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실제 시베리아 샤먼들의 복장은 부족마다 달랐으며, 주로 순록 가죽의 갈색 톤에 금속 장신구나 띠를 두른 형태가 많았다. 


붉은색과 흰색의 조합을 광대버섯과 연결하는 것은 1960-70년대 R. 고든 와슨(R. Gordon Wasson)과 같은 민속균류학자나 존 알레그로(John Allegro) 같은 학자들이 제기한 주장이 대중문화 속에서 확대재생산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설이 대중에게 강력하게 어필하는 이유는, 크리스마스가 가진 ‘마법적’이고 ‘비일상적’인 성격을 원초적인 인류의 종교 체험과 연결하기 때문이다. 비록 역사적 계보는 단절되어 있을지라도, 추운 겨울밤에 초월적인 존재가 선물을 가지고 방문한다는 원형적 이야기 구조(archetypal narrative)는 시베리아의 유르트와 뉴욕의 아파트에서 동시에 발견되는 인류 공통의 심상을 건드린다.



로마의 태양과 12월 25일 – 사투르날리아와 솔 인빅투스

로마의 태양과 성탄
로마의 태양과 성탄


시베리아의 눈보라를 뒤로하고 남쪽으로 내려오면,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날짜와 축제 형식의 기원이 되는 고대 로마 제국을 만날 수 있다. 12월 25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탄생일이 아니라는 것은 성서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사실이다. 


성경에는 예수가 태어날 때 목자들이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유대의 겨울 날씨를 고려할 때 12월에 양을 들판에 방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하필 12월 25일인가? 그 해답은 로마의 동지 축제에 있다.



1. 사투르날리아(Saturnalia) – 전복과 환락의 카니발


고대 로마에는 12월 17일부터 23일까지 농경의 신 사투르누스(Saturn)를 기리는 축제, 사투르날리아가 있었다. 이 기간은 로마 사회 전체가 일상의 규율에서 벗어나 광란의 축제로 빠져드는 시기였다. 


법정은 문을 닫았고, 전쟁은 중단되었으며, 무엇보다 사회적 계급 질서가 일시적으로 전복되었다. 노예들은 주인과 함께 식탁에 앉거나, 심지어 주인이 노예에게 시중을 들기도 했다. 사람들은 ‘필레우스(pileus)’라는 자유민의 모자를 쓰고 거리를 활보하며 “이오 사투르날리아!”(Io Saturnalia!)라고 외쳤다. 


이 축제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선물 교환이었다. 축제의 마지막 날인 12월 23일은 ‘시기라리아(Sigillaria)’라고 불렸는데, 이날 로마인들은 점토로 만든 인형(sigilla)이나 양초, 과일, 견과류 등을 서로 선물했다. 특히 양초를 선물하는 것은 동지(冬至)가 지나고 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기념하며 빛의 귀환을 축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현대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벌어지는 먹고 마시는 연회, 선물 교환, 그리고 일상의 노동에서 해방되는 즐거움은 기독교적이라기보다는 명백히 사투르날리아적 유산이다. 초기 기독교는 엄숙한 종교 의례보다는 이교도들의 떠들썩한 축제 관습을 흡수함으로써 대중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는 ‘대체(replacement)’가 아닌 ‘동화(assimilation)’의 전략이었다.



2. 솔 인빅투스(Sol Invictus) – 정복되지 않는 태양


사투르날리아가 끝나고 이틀 뒤인 12월 25일은 로마 달력상 동지(Winter Solstice)이자, 솔 인빅투스(Sol Invictus), 즉 ‘정복되지 않는 태양신’의 탄생일이었다. 서기 274년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Aurelian)는 제국의 통합을 위해 태양신 숭배를 국교 수준으로 격상시켰고, 12월 25일을 태양신의 축일로 지정했다.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는 페르시아에서 유래한 미트라교(Mithraism)가 군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미트라 역시 태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신이었다. 기독교는 이러한 태양 숭배 사상과 경쟁해야 했다. 


기독교 변증가들은 예수를 “세상의 빛”이자 “의로움의 태양(Sun of Righteousness, 말라기 4:2)”으로 묘사하며, 물리적인 태양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의 축일을 영적인 태양인 예수의 탄생일로 치환하려 했다. 

“이교도들이 12월 25일에 태양의 탄생을 축하하며 횃불을 밝힌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참된 빛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자.”


이러한 종교사적 가설(History of Religions Hypothesis)은 기독교가 전략적으로 12월 25일을 선택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계산 가설(Calculation Hypothesis)을 제기하기도 한다. 


고대 유대 전승에 따르면 위대한 예언자는 잉태된 날과 죽은 날이 같다고 믿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유월절, 3월 25일)을 잉태일(수태고지일)로 보았고, 그로부터 정확히 9개월을 더해 12월 25일을 탄생일로 계산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4세기 중반(서기 354년의 필로칼루스 달력 기록)에 이르면 12월 25일은 로마 교회에서 공식적인 성탄절로 자리 잡게 된다. 이로써 기독교는 로마인들이 가장 사랑하던 겨울 축제의 시즌을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절기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나무에 걸린 죽음과 생명 – 크리스마스 트리의 어두운 뿌리와 승화

나무에 걸린 죽음과 생명
나무에 걸린 죽음과 생명


크리스마스 트리는 오늘날 평화와 기쁨의 상징이지만, 그 기원을 파고들면 섬뜩한 고대의 의식과 마주하게 된다. 인터넷상에는 트리의 오너먼트가 고대 드루이드나 바이킹이 나무에 매달았던 ‘희생제물의 잘린 머리’나 ‘내장’에서 유래했다는 괴담이 떠돌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도시괴담일까, 아니면 잊힌 역사의 파편일까?



1. 켈트의 숲과 잘린 머리 숭배


고대 켈트족에게 숲은 신성한 장소(nemeton)였고, 나무는 영혼이 깃든 매개체였다. 로마의 역사가 루카누스(Lucan)나 타키투스(Tacitus)의 기록에 따르면, 켈트족과 게르만족은 숲속의 신성한 숲에서 인신공양을 포함한 제사를 지냈다. 


특히 켈트족에게는 ‘잘린 머리 숭배(Cult of the Severed Head)’라는 독특한 관습이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영혼이 머리에 깃들어 있다고 믿었으며, 적의 머리를 베어 기름에 보존하거나 집 입구, 혹은 신성한 나무에 걸어두는 행위를 통해 적의 힘을 소유하거나 악령을 쫓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일부 연구자들과 민속학자들은 이러한 고대의 관습이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과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나무에 둥근 물체를 매다는 행위의 원형적 이미지가 고대의 ‘트로피’ 전시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북유럽 신화에서 오딘(Odin)은 지혜를 얻기 위해 세계수 이그드라실(Yggdrasil)에 거꾸로 매달려 자신을 희생했고, 아티스(Attis) 신화에서는 소나무 아래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신의 모습이 묘사된다. 이러한 피와 희생의 이미지는 상록수가 가진 ‘영원한 생명’이라는 상징과 결합하여, 죽음을 통해 생명을 기원하는 이교도적 역설을 보여준다.



2. 성 보니파키우스와 참나무의 전설


하지만 기독교는 이러한 피비린내 나는 이교도적 관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극적으로 변용시켰다. 8세기경 독일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펼친 성 보니파키우스(St. Boniface)의 전설은 이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설에 따르면, 보니파키우스는 게르만족이 토르(Thor) 신에게 바치기 위해 떡갈나무(Donar’s Oak) 아래에서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려는 현장을 목격했다. 분노한 그는 도끼를 들어 그 신성한 떡갈나무를 단번에 베어버렸다. 사람들은 천벌이 내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쓰러진 떡갈나무 뿌리 사이에서 어린 전나무(Fir tree)가 자라나고 있었다. 


보니파키우스는 이 전나무를 가리키며 “이 나무의 잎은 1년 내내 푸르니 영생을 상징하고, 그 끝이 하늘을 향하니 십자가를 닮았다. 이제 피의 희생 대신 이 나무를 집으로 가져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라”고 설교했다. 이 이야기는 나무 숭배라는 이교도적 형식을 유지하되, 그 내용을 ‘인신공양’에서 ‘가족 중심의 평화로운 예배’로 180도 전환시킨 결정적인 순간을 묘사한다.



3. 중세의 낙원극과 길드의 축제


현대적인 크리스마스트리의 직접적인 조상은 중세의 ‘낙원극(Paradise Plays)’과 ‘길드(Guild)’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 유럽의 교회력에서 12월 24일은 아담과 이브의 축일이었다. 


문맹인 대중에게 성경 내용을 가르치기 위해 교회 앞 광장에서는 연극이 공연되었는데, 에덴동산의 선악과나무를 표현하기 위해 한겨울에도 푸른 전나무를 세우고 붉은 사과를 매달았다. 연극이 끝난 후 사람들은 이 ‘낙원의 나무(Paradeisbaum)’를 집안으로 들여와 장식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거운 사과는 속이 빈 가벼운 유리 볼이나 과자로 대체되었고, 아담과 이브를 상징하는 인형 대신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별과 천사 장식이 추가되었다. 오늘날 트리에 매다는 붉은 오너먼트 볼(Bauble)은 고대 켈트족의 잘린 머리가 아니라, 에덴동산의 ‘금단의 열매(사과)’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15-16세기 현재의 에스토니아(탈린)와 라트비아(리가) 지역의 상인 조합인 ‘검은 머리 전당(Brotherhood of Blackheads)’은 기록상 최초의 공공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441년과 1510년의 기록에 따르면, 길드의 젊은 상인들은 광장에 장식된 큰 나무를 세우고 주위를 돌며 춤을 춘 뒤, 축제의 절정에서 나무를 태우는 의식을 치렀다. 이는 북유럽의 동지 때 장작(Yule Log)을 태우던 관습이 도시화된 축제 형태로 진화한 것이다.



4. 빅토리아 여왕과 트리의 세계화


독일과 북유럽에 국한되었던 이 관습이 전 세계로 퍼진 것은 19세기 영국 왕실 덕분이었다. 독일 출신인 앨버트 공(Prince Albert)과 결혼한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은 윈저 성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가족들과 함께 즐기는 모습을 1848년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를 통해 공개했다. 이 삽화는 대영제국 전역과 미국으로 퍼져나갔고, 크리스마스 트리는 중산층 가정의 행복과 화목을 상징하는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시대트리의 형태 및 의미주요 장식물비고
고대 (켈트/게르만)신성한 숲, 희생 제의, 율(Yule) 장작제물, 음식, 촛불생명의 기원 및 악령 퇴치 

https://www.theclanbuchanan.com/religion-spirituality 
중세 (기독교)낙원의 나무 (Paradise Tree)붉은 사과, 웨이퍼(성체)아담과 이브의 날(12/24) 연극 소품 

Christmas tree – Wikipedia 
르네상스 (길드)공공 광장의 축제용 트리종이꽃, 말린 과일, 견과류춤추고 난 뒤 소각하는 축제 

Christmas tree – Wikipedia 
근대 (빅토리아 시대)가정의 중심, 가족의 화목유리 볼, 틴셀, 장난감왕실 문화를 중산층이 모방 

Why do we have Christmas trees? The surprising history behind this holiday tradition. | National Geographic 



자본주의와 산타클로스의 재발명 – 성자에서 코카콜라 맨으로

자본주의와 산타클로스의 재발명
자본주의와 산타클로스의 재발명


산타클로스는 성 니콜라스라는 역사적 인물에서 시작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아는 뚱뚱하고 쾌활한 할아버지의 모습은 19세기와 20세기 미국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흔히 “코카콜라가 산타의 붉은 옷을 발명했다”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퍼져 있지만, 이는 마케팅이 만들어낸 현대의 신화 중 하나일 뿐이다. 팩트는 훨씬 더 복잡하고 흥미롭다.



1. 토마스 나스트와 남북전쟁의 산타


현대 산타클로스의 시각적 이미지를 처음 정립한 인물은 ‘미국 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토마스 나스트(Thomas Nast)였다. 1863년, 미국이 남북전쟁의 포화 속에 있을 때, 나스트는 <하퍼스 위클리(Harper’s Weekly)>에 산타클로스 삽화를 게재했다. 당시 그의 산타는 북부군(Union)을 지지하는 애국적인 인물로 묘사되었으며, 성조기 무늬의 옷을 입고 군인들에게 선물을 나눠주었다.


나스트는 이후 1886년까지 매년 크리스마스 삽화를 그리며 산타의 설정을 구체화했다. 그는 산타가 북극(North Pole)에 산다는 설정,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의 리스트를 기록한다는 설정, 그리고 굴뚝을 통해 들어온다는 설정을 시각적으로 고착화시켰다. 


초기에는 갈색 털옷이나 초록색 옷을 입기도 했으나, 1881년 그의 대표작인 “Merry Old Santa Claus”에서는 풍성한 흰 수염과 배가 불룩 나온 모습, 그리고 분명한 붉은색 계통의 옷을 입은 산타를 완성했다. 즉, 산타의 붉은 옷은 코카콜라 이전부터 이미 대중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2. 화이트 락(White Rock)과 잃어버린 고리


코카콜라가 산타를 독점하기 전, 이미 산타를 광고 모델로 기용한 음료 회사가 있었다. 바로 화이트 락(White Rock)이다. 이 회사는 1915년에 흑백 광고로, 그리고 1923년과 1925년에는 <라이프(Life)> 매거진에 컬러 광고로 산타클로스를 등장시켰다. 이 광고 속 산타는 붉은 옷을 입고 미네랄 워터나 진저에일을 마시며 짐을 나르고 있었다. 


이는 “코카콜라가 산타의 붉은 옷을 처음 입혔다”는 주장을 완벽하게 반박하는 역사적 증거이다. 산타의 붉은 옷은 특정 기업의 발명품이라기보다는, 성 니콜라스 주교의 붉은 제의(vestment) 전통과 19세기 삽화가들의 상상력이 결합되어 서서히 표준으로 굳어진 결과였다.



3. 코카콜라와 해던 선드블롬 – 표준화와 세계화


그렇다면 코카콜라의 역할은 무엇인가? 코카콜라는 산타를 ‘발명’하지는 않았지만, 산타를 ‘표준화(Standardization)’하고 전 지구적으로 ‘유포(Distribution)’했다. 1931년, 코카콜라는 겨울철 판매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일러스트레이터 해던 선드블롬(Haddon Sundblom)에게 산타 광고 제작을 의뢰했다.


선드블롬은 클레멘트 클라크 무어의 시 <성 니콜라스의 방문(A Visit from St. Nicholas, 1823)>에서 묘사된 “장밋빛 뺨, 체리 같은 코, 흰 수염”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기존의 엄격하거나 작은 요정 같았던 산타를 인간적이고 따뜻한 할아버지로 재창조했다. 그는 자신의 이웃이었던 은퇴한 세일즈맨 루 프렌티스(Lou Prentiss)를 모델로 삼아 산타의 넉넉한 미소를 그려냈다.


코카콜라의 막대한 자본력은 이 이미지를 잡지, 포스터, 빌보드 등을 통해 전 세계에 뿌렸다. 선드블롬이 그린 산타는 1931년부터 1964년까지 30년 넘게 코카콜라 광고의 메인으로 사용되었고, 이 과정에서 초록색이나 갈색 옷을 입은 다른 산타 이미지들은 대중의 뇌리에서 도태되었다. 


코카콜라는 산타에게 코카콜라의 브랜드 컬러인 ‘코크 레드(Coke Red)’를 입힘으로써, 크리스마스라는 종교적 명절을 브랜드의 소비 의례로 치환하는 데 성공했다.



4. 루돌프 사슴코 – 100% 상업적 발명품


산타클로스가 민속과 상업의 혼합물이라면, ‘빨간 코 순록 루돌프’는 순수한 자본주의의 기획 상품이다. 루돌프는 고대 전설이나 신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1939년, 미국 시카고의 백화점 체인인 몽고메리 워드(Montgomery Ward)는 크리스마스 판촉용으로 아이들에게 나눠줄 무료 색칠 공부 책을 기획했다. 외부에서 책을 사 오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사내 카피라이터였던 로버트 L. 메이(Robert L. May)에게 이야기 창작을 맡겼다. 


당시 메이는 아내가 암 투병 중이었고, 빚더미에 앉아 어린 딸을 키우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체구가 작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따돌림당했던 경험을 투영하여 ‘왕따 순록’ 이야기를 구상했다. 처음에는 순록의 이름을 ‘롤로(Rollo)’나 ‘레지널드(Reginald)’로 하려 했으나 결국 ‘루돌프(Rudolph)’로 결정했다.


경영진은 처음에 “빨간 코는 술주정뱅이(drunkard)를 연상시킨다”며 이 아이디어를 거부했다. 하지만 메이는 동료 아티스트 덴버 길렌(Denver Gillen)과 함께 링컨 파크 동물원에 가서 사슴을 스케치하며 귀엽고 사랑스러운 붉은 코 순록 이미지를 만들어 경영진을 설득했다.


이 책은 첫해에만 240만 부가 배포되며 대히트를 쳤다. 이후 1949년, 메이의 처남인 작곡가 조니 마크스(Johnny Marks)가 이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고 가수 진 오트리(Gene Autry)가 부르면서 루돌프는 산타의 썰매를 끄는 9번째 순록으로 영원히 신화 속에 편입되었다. 한 가난한 가장의 슬픔과 백화점의 비용 절감 노력이 만나 현대의 새로운 민속(folklore)을 탄생시킨 것이다.



현대인이 소비하는 신성(Sacredness)의 콜라주

현대인이 소비하는 신성의 콜라주
현대인이 소비하는 신성의 콜라주


지금까지 우리는 크리스마스라는 거대한 문화적 건축물의 기둥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시베리아의 설원에서 환각 버섯을 먹고 날아올랐던 샤먼의 엑스터시, 로마의 거리에서 신분 질서를 뒤집고 환락에 빠졌던 사투르날리아의 해방감, 죽음의 상징이었던 잘린 머리가 생명의 상징인 사과와 오너먼트로 변모한 과정, 그리고 백화점의 마케팅 전략이 만들어낸 붉은 코 순록의 드라마까지….


이 모든 팩트체크를 통해 도달하는 결론은 명확하다. 크리스마스는 순수한 종교적 원형이 보존된 날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문화적 밈(Meme)들이 살아남아 융합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은 우리에게 겨울의 어둠 속에서 ‘빛’과 ‘비행’을 꿈꾸는 원초적인 욕망을 제공했다. 비록 역사적 연결고리는 약하지만, 산타의 비행은 인류의 오랜 꿈을 대변한다.


로마의 축제와 기독교는 ‘동지’라는 자연의 절기를 ‘구원’이라는 신학적 의미로 승화시켰다. 태양이 다시 살아나는 날, 신의 아들도 태어난다는 설정은 우주적 질서와 종교적 믿음을 일치시킨 천재적인 혼합주의(Syncretism)였다.


자본주의는 이 복잡한 역사적 층위들을 매끄럽게 다듬고 포장하여 전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었다. 코카콜라의 산타와 몽고메리 워드의 루돌프는 종교나 민족을 초월하여 누구나 소비할 수 있는 보편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이제 당신이 크리스마스 트리에 붉은 방울을 달 때,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에덴의 사과이자, 고대의 태양이며, 어쩌면 시베리아의 붉은 버섯일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그리고 산타클로스의 붉은 옷을 보며 코카콜라를 떠올리든 성 니콜라스를 떠올리든, 그 속에는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고 싶어 했던 인류의 수천 년 된 염원이 담겨 있다. 크리스마스는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그리고 우리를 만들어가는 가장 오래되고도 가장 현대적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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