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소비 트렌드, 두바이 쫀득 쿠키(두쫀쿠) 열풍의 사회학적 의미


2026년 겨울 대한민국을 뒤흔든 두바이 쫀득 쿠키(두쫀쿠) 현상은 단순한 미식 유행을 넘어 디지털 스펙터클과 소외된 개인의 욕망이 교차하는 복잡한 사회학적 텍스트이다. 영하 15도의 혹한 속에서도 이어지는 오픈런 행렬은 현대인이 갈구하는 감각적 쾌락의 본질과 타인의 시선에 종속된 디토 소비의 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본 포스트는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 이론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 개념을 빌어, 원본 없는 복제물인 시뮬라크르에 열광하는 2026년 한국 소비 사회의 기호학적 구조를 심도 있게 추적하고 주체적 소비의 회복 가능성을 탐색한다.


두바이 쫀득 쿠키 열풍
두바이 쫀득 쿠키 열풍





강추위 속 순례자들과 디저트의 지정학


지난 2026년 1월 12일, 서울의 아침 기온은 영하 15도를 기록했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도심의 빌딩 숲 사이를 휘감고 돌았지만, 광진구의 한 좁은 골목은 기이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오전 11시 30분, 아직 가게 문이 열리려면 30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30미터가 넘게 늘어선 행렬은 마치 고행을 자처하는 종교적 순례자들을 연상케 했다. 


그들의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고,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었으며, 눈빛은 전방의 닫힌 셔터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구원이나 영생의 약속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름 10센티미터 남짓, 튀르키예산 카다이프 면과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를 품고 찹쌀떡의 질감을 흉내 낸 마시멜로로 감싸진 과자, 이른바 ‘두바이 쫀득 쿠키(두쫀쿠)’였다.


이 기이한 풍경은 2026년 현재 대한민국 소비문화의 현주소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1개당 4,800원에서 비싸게는 1만 원에 육박하는 이 디저트를 얻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과 육체를 기꺼이 담보로 제공한다. 


직장인 송예은(가명) 씨(30)는 “이미 세 번째 오픈런”이라며 “구하기 어려우니 더 끌린다”고 고백했고, 지수진(가명) 씨(31)는 “인스타그램에서 친구들이 먹는 모습이 계속 뜨니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단순한 식욕의 발현이 아니다. 이것은 결핍과 과시, 불안과 위로가 뒤엉킨 복잡한 사회학적 텍스트다.



두쫀쿠의 계보학과 물성의 정치

Maria Vehera
Maria Vehera


두쫀쿠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혜성이 아니다. 그것은 2024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두바이 초콜릿’의 유전자를 계승하되, 한국적 식감의 문법으로 재해석된 진화의 산물이다. 당시 두바이 초콜릿은 아랍에미리트의 인플루언서 마리아 베하라(Maria Vehera)가 틱톡에 올린 영상 하나로 시작되어 전 세계적인 품귀 현상을 빚었다. 


얇은 국수 형태의 카다이프(Kadaif)를 버터에 볶아 피스타치오 크림과 섞어 넣은 그 초콜릿은 ‘바삭함(Crunchy)’이라는 청각적 쾌감을 극대화한 제품이었다. 그러나 2026년의 한국 소비자는 단순히 바삭함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한국 디저트 시장의 불변의 흥행 보증수표인 ‘쫀득함(Chewy)’이다. 


두쫀쿠는 카다이프의 바삭한 속재료를 유지하되, 그 겉면을 녹인 마시멜로 혹은 찹쌀떡 반죽으로 감싸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서구(중동)의 이국적 재료와 한국 전통의 식감(떡)을 결합한 혼종(Hybrid)이자, 씹는 재미를 중시하는 한국인의 구강 촉각적 욕망을 정확히 타격한 결과물이다.



1. 옴니보어 소비와 텍스처의 사회학


2026년의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옴니보어(Omnivore)’ 세대는 경계를 허무는 잡식성 소비를 특징으로 한다. 이들은 장르의 구분, 국적의 경계, 가격의 고저를 따지지 않고 자신에게 감각적 쾌락을 주는 대상을 닥치는 대로 소비한다. 


두쫀쿠는 이러한 옴니보어적 성향에 최적화된 상품이다. 겉은 부드럽고 쫀득하지만 속은 거칠고 바삭한 이중적인 물성은, 하나의 제품에서 상반된 감각을 동시에 느끼고자 하는 현대인의 ‘감각 과부하’ 욕구를 충족시킨다. 옴니보어는 원래 잡식성 동물(고기와 식물을 모두 섭취하는 동물)을 뜻하는 생물학 용어다.


편의점 업계의 대응은 이러한 물성의 중요성을 증명한다. CU의 ‘두바이 쫀득 찹쌀떡’은 출시 3개월 만에 180만 개가 팔려나갔고, GS25의 ‘두바이 쫀득 초코볼’은 입고 즉시 97%의 판매율을 기록했다. 


편의점들은 ‘바삭-쫀득-바삭’이라는 식감의 레이어를 강조하며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데, 이는 맛(Taste)보다 식감(Texture)이 소비의 우선순위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달콤함은 혀끝에서 끝나지만, 쫀득함과 바삭함은 씹는 행위를 통해 뇌에 더 강력한 자극을 남기기 때문이다.



2. 카다이프와 피스타치오의 역설


두쫀쿠 열풍 뒤에는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성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핵심 재료인 카다이프와 피스타치오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데, 폭발적인 수요 증가는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이는 한국의 디저트 유행이 글로벌 농산물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나비 효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재료들의 ‘진정성(Authenticity)’은 이미 훼손되었다.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 일부 업체들은 카다이프 대신 한국의 소면을 튀겨 넣거나, 피스타치오 함량을 대폭 낮춘 채 향만 첨가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소비자가 “이거 소면 아니냐”며 항의하는 사태는,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이 실제 ‘두바이의 맛’이 아니라 ‘두바이 스타일’이라 명명된 시뮬라크르(Simulacra)임을 폭로한다. 원본 없는 복제물이 원본의 지위를 대체하고, 소비자는 그것이 가짜임을 의심하면서도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지갑을 여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5성급 호텔에서 순대국밥집까지


2026년 두쫀쿠 현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판매 공간의 무분별한 확장, 즉 ‘장르의 붕괴’다. 통상적으로 디저트는 베이커리나 카페의 전유물이었으나, 두쫀쿠는 국밥집, 횟집, 초밥집, 곱창집의 메뉴판까지 침투했다. 


“가만히 있으면 매출이 빠지니 유행이라도 팔아야 한다”는 한 식당 업주의 절박한 증언은, 장기화된 경기 침체 속에서 자영업자들이 겪고 있는 생존의 위기를 대변한다.


이러한 식당들에서 두쫀쿠는 주력 메뉴가 아닌 ‘미끼 상품(Loss Leader)’으로 기능한다. ‘식사 메뉴 주문 필수’, ‘1인 1개 한정’과 같은 조건을 내건 판매 방식은, 소비자가 국밥을 먹기 위해 식당에 오는 것이 아니라 쿠키를 사기 위해 국밥을 ‘부수적으로’ 구매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을 연출한다. 


이는 공간의 고유한 정체성이 유행이라는 거대한 해일에 휩쓸려 희석되는 과정이다. 국밥집은 더 이상 국밥의 맛으로 승부하는 공간이 아니라, 최신 유행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거점’으로 변모했다.



1. 호텔의 쁘띠 푸 – 계급적 구별 짓기의 실패와 재구축


반대편 극단에는 5성급 호텔이 있다. 롯데호텔 서울의 프렌치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은 코스 요리의 마지막 디저트인 ‘쁘띠 푸(Petit Four)’로 두쫀쿠를 재해석해 내놓았다. 


보통 유행을 반영하는 속도가 느린 호텔 업계가 이토록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이례적이다. 그들은 구하기 힘든 카다이프 대신 ‘파에테 포요틴(Paillete Feuilletine, 바삭한 크레페 조각)’을 사용하여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계급적 역학이 발생한다. 국밥집의 3,000원짜리 두쫀쿠와 호텔의 수십만 원대 코스 요리에 포함된 두쫀쿠는 같은 이름을 공유하지만, 전혀 다른 사회적 기호로 소비된다. 대중이 편의점과 국밥집에서 ‘보급형 유행’을 소비할 때, 상류층은 호텔에서 셰프의 터치가 가미된 ‘프리미엄 유행’을 향유한다. 


이는 겉으로는 유행의 평준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소비의 공간과 디테일을 통해 더욱 교묘하게 계급을 구별 짓는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적 구별 짓기(Distinction)의 현장이다. 


참고로 피에르 부르디외는 1930년에 태어난 프랑스의 사회학자로, 그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 입는 옷, 즐기는 예술 등의 ‘취향’이 단순히 개인적인 선호가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계급을 드러내고 남들과 자신을 구별 짓는 도구라고 주장했다. 이 내용을 담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가 바로 『구별 짓기(La Distinction)』다.



2. 두쫀쿠 지도와 디지털 유목민


이 모든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체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당근마켓의 동네생활 게시판이나 네이버 지도를 기반으로 한 ‘두쫀쿠 맵’의 등장은, 소비자들이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재고가 있는 매장을 찾아 헤매는 현상을 가속화했다. 검색량이 전월 대비 30배 폭증했다는 데이터는, 현대의 소비가 물리적 공간 방문 이전에 디지털 공간에서의 정보 탐색전으로 먼저 치러짐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정보 접근성이 낮은 디지털 소외 계층은 유행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재고를 확인하고 오픈런을 뛸 수 있는 ‘시간과 정보의 부자’들만이 이 달콤한 전리품을 획득할 수 있다. 두쫀쿠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단순히 맛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접속하지 못한 ‘낙오자’라는 미묘한 박탈감(FOBLB – Fear Of Being Left Behind)을 느끼게 된다.



스펙터클의 사회 – 구경거리가 된 식욕

Guy Debord
Guy Debord


프랑스의 사상가 기 드보르(Guy Debord)는 그의 저서 『스펙터클의 사회 (The Society of the Spectacle)』에서 “현대 사회의 모든 삶이 거대한 구경거리(Spectacle)의 집적으로 나타난다”고 선언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고도화됨에 따라 인간의 삶이 ‘존재(Being)’에서 ‘소유(Having)’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구경거리/출현(Appearing)’으로 전락한다고 보았다. 두쫀쿠 현상은 이 이론을 완벽하게 입증하는 사례 연구다.

존재의 단계: 배가 고파서 떡이나 과자를 먹는 행위.

소유의 단계: 맛있는 것으로 소문난 유명한 쿠키를 구매하여 만족감을 느끼는 행위.

구경거리의 단계: 쿠키를 먹는 것보다, 쿠키를 사기 위해 줄을 선 모습, 쿠키를 반으로 갈랐을 때 늘어나는 마시멜로와 쏟아지는 피스타치오 크림의 영상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행위가 더 중요해지는 단계.


2026년의 두쫀쿠 소비는 철저히 세 번째, 즉 구경거리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인스타그램 릴스나 틱톡에서 ‘반갈샷(반을 갈라 내용물을 보여주는 샷)’이 유행하는 것은, 이 쿠키가 미각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 시각을 위한 오브제(Objet)임을 방증한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차후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 ‘핫한’ 이미지를 획득했고, 이를 통해 타인의 시선(좋아요)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드보르의 말처럼 “보이는 것이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은 보이는 것”이 된 세상이다.



1. 디토(Ditto) 소비와 주체의 상실


이 스펙터클의 확산 과정에서 개인의 주체성은 설 자리를 잃는다. 인하대 소비자학과 황진주 교수가 지적한 ‘디토(Ditto) 소비’는, 자신의 취향이나 판단을 유보하고 맹목적으로 타인(인플루언서, 연예인)을 추종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안성재 셰프, 소녀시대 윤아, 장원영 같은 유명인들이 두쫀쿠를 먹는 모습이 노출되면, 대중은 “나도(Ditto)”를 외치며 모방 소비에 뛰어든다.


유튜버 ‘젼언니’나 ‘에이미’가 2026년 디저트 트렌드를 예측하고 시식하는 영상은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대중에게 ‘무엇을 욕망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모방 욕망’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대상을 직접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중개자(모델)가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즉, 사람들은 두쫀쿠라는 물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쿠키를 통해 유명인과 동일시되고자 하는 욕망, 트렌드의 중심에 있다는 안도감을 구매하는 것이다.



2. 줄 서기의 권력과 소외


영하 15도의 날씨에 1시간 넘게 줄을 서는 행위는 스펙터클 사회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육체적 규율이다. 30미터의 대기 줄은 그 자체로 매장이 연출하는 거대한 광고판이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그 줄을 보며 “저기에 뭔가 대단한 것이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된다. 매장은 충분한 물량을 공급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혹은 없음을 가장하여), ‘하루 80개 한정’ 등의 제약을 통해 인위적인 희소성을 만들어낸다.


줄을 서 있는 동안 사람들은 서로 대화하지 않는다. 각자 스마트폰을 보며 또 다른 스펙터클을 소비한다. 드보르는 이를 “분리된 것들의 허위적 통합”이라고 불렀다. 같은 공간,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여 있지만, 그들은 철저히 고립되어 있다. 스마트폰이라는 스크린을 매개로만 세상과 연결된 이 ‘고독한 군중’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가장 쓸쓸한 풍경 중 하나다.



3. 리셀과 사기 – 기호 가치의 폭주


상품의 사용 가치(맛, 영양)가 사라지고 기호 가치(유행, 과시)만 남았을 때, 시장은 기형적으로 변한다. 중고 거래 앱에서는 4,800원짜리 쿠키가 5,000원~1만 원에 거래되고, 심지어 재료인 카다이프면을 웃돈을 얹어 파는 리셀러들이 활개를 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기 범죄다. 울산의 한 카페 주인은 카다이프를 구하지 못해 사기를 당했고, 일부 판매자는 소면을 카다이프라고 속여 판다. 소비자가 진짜 카다이프의 맛을 잘 모른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가 현실을 조롱하는 단계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혹은 가짜임을 알면서도 ‘두쫀쿠’라는 이름표만 붙어 있으면 소비하는 맹목성은 우리 사회의 비판적 이성이 마비되었음을 경고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 오독(誤讀)과 2026년의 새로운 행복론

Haruki Murakami
Haruki Murakami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단어는 원래 1986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유래했다. 하루키는 이 책에서 소확행을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가득 차 있는 것”이라고 묘사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하루키적 소확행의 핵심 조건은 두 가지다.

자율성(Autonomy):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와 무관하게, 나만의 기준과 취향으로 느끼는 만족감.

비상품성 혹은 저비용: 거대 자본이나 유행에 종속되지 않는 일상의 소소한 발견.


하루키의 행복은 ‘전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충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강요하는 성공이나 거창한 목표 달성이 없더라도, 개인이 스스로의 삶을 긍정할 수 있게 하는 방어기제였다.



1. 2026년 소확행의 변질 – 크고, 불확실하며, 타율적인


그러나 2026년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소확행은 하루키의 정의와 정반대의 지점에 있다. 두쫀쿠 열풍으로 대변되는 작금의 소확행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작지 않은 비용(High Cost): 개당 약 5,000원하는 쿠키는 결코 소소하지 않다. 밥값에 육박하는 디저트 가격은 불황기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사치의 한계선, 즉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의 변형이다. 명품 가방을 살 수 없는 세대가 명품 쿠키를 사며 위안을 얻지만, 그 비용의 총합은 결코 적지 않다.


불확실성(Uncertainty): 오픈런은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줄을 섰다가도 앞에서 매진되면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확실한’ 행복이 아니라 도박에 가까운 ‘확률적’ 행복이다.


타율성(Heteronomy):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가 아니라, 남들이 다 하니까 불안해서 따라 하는 행복이다. 이는 자율적 행복이 아니라 ‘승인 욕구’의 충족에 불과하다.


따라서 2026년의 소확행은 기업 마케팅이 차용한 기만적인 슬로건에 불과하다. 그것은 행복이라는 감정마저 상품화하여 판매하는 자본주의의 고도로 발달한 전략이다.



2. 압축 소비와 보상 심리


2026년의 소비 트렌드 중 하나인 ‘압축 소비’는 자신에게 중요한 영역에만 자원을 집중하는 현상을 말한다. 경제적 여건이 악화되면서 전반적인 소비는 줄이되, 두쫀쿠와 같은 특정 아이템에는 과감하게 지갑을 여는 ‘선택적 프리미엄’ 전략이다.


이는 힘든 현실에 대한 보상 심리와 맞물려 있다. 영하의 추위와 고된 노동, 불투명한 미래를 견뎌낸 현대인에게 달콤하고 쫀득한 쿠키 한 조각은 즉각적인 도파민을 제공하는 유일한 탈출구다. 


하지만 그 탈출구는 일시적이며, 쿠키가 입안에서 사라지는 순간 공허함은 더 크게 밀려온다. 우리는 행복을 ‘사는(Buy)’ 행위로 ‘사는(Live)’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그 등식은 결코 성립하지 않는다.



달콤한 환각에서 깨어나기

두쫀쿠
두쫀쿠


2026년 1월의 두쫀쿠 열풍은 단순한 미식 트렌드가 아니다. 그것은 혹한과 경제 위기(불황), 그리고 정체성의 위기(디토 소비)가 중첩된 현대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홀로그램이다. 카다이프 면의 바삭함과 찹쌀떡의 쫀득함이 결합된 그 식감은, 불안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위안을 제공한다.


그러나 기 드보르의 경고처럼,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쿠키의 실체가 아니라 그것이 뿜어내는 ‘이미지’다. 국밥집에서 파는 쿠키, 5성급 호텔의 쿠키, 그리고 당근마켓의 리셀 쿠키는 모두 본질에서 벗어난 기호들의 춤판이다. 줄을 서는 행위는 소외된 개인들이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 고립을 확인하는 의식이 되었고, 소확행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과시적 소비로 변질되었다.



진짜 ‘소확행’과 주체성의 회복을 위하여


이 달콤한 환각에서 깨어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소비의 주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남들이 먹으니까”가 아니라 “내 미각이 원해서” 선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취향이 아니라, 내가 직접 탐색하고 발견한 취향의 가치를 믿어야 한다.


둘째, 스펙터클의 이면을 직시해야 한다. 화려한 인증샷 뒤에 숨겨진 자영업자의 고통, 재료 수급의 불안정성, 그리고 마케팅에 의해 조작된 희소성을 꿰뚫어 보는 비판적 시각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진정한 의미의 ‘소확행’을 재정의해야 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으로서의 행복이 아니라, 하루키가 말했던 것처럼 일상의 통제권을 내가 쥐고 있다는 감각, 돈이 들지 않는 사소한 순간들에서 오는 자율적 기쁨을 복원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물론, 두쫀쿠 열풍은 곧 사그라들 것이다. 2024년의 탕후루가 그랬고, 2025년의 요아정(요거트 아이스크림)이 그랬듯이 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곧 또 다른 가면을 쓴 스펙터클을 내놓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또다시 영하의 추위 속에 줄을 설 것인가, 아니면 따뜻한 집에서 자신의 옷을 개며 미소 지을 것인가. 선택은 오직 깰 준비가 된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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